저는 HR이라는 일을 해왔습니다. 만일 누군가 HR을 HRM과 HRD로 구분하여 이야기한다면 제 경험은 HRM에 훨씬 많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간 만났던 HRDer들을 떠올려보면, 확실히 활동성이 높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나온 시간에 조직문화 담당자라고 하면 HRD 경험을 가진 분들이 많았던 듯 합니다. 언젠가 HRM을 하고 있다는 제 대답에 "그러면 조직문화를 다뤄본 적 없는 거네요?"라고 답하는 분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 이러한 조직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으로서 아티팩트(artifact)를 기반으로 조직문화를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거 고성과를 내는 구성원들의 구체적 행동을 고성과 역량으로 정의하고 그러한 행동이 관찰되는 빈도를 기준으로 역량을 측정하려고 했던 시도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돌아보면 이러한 시도는 나름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래도 구체적이고 명확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The Three Levels of Culture 조직문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알아야 하는 분이 있습니다. Edgar H. Schein이라는 분이지요. Edgar Schein은 그의 책 「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에서 조직문화를 다음의 세 가지 수준으로 이야기합니다. 1. 아티팩트 (artifacts) 아티팩트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관찰하기 용이하지만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책은 그 예로 이집트와 마야문명에서의 피라미드를 이야기합니다. 피라미드라는 외형은 동일하지만 그 피라미드에 부여하는 의미는 무덤과 사원으로 서로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아티팩트는 관찰할 수 있지만 그 아티팩트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지에 대해서 아티팩트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HRM을 해온 저에게 '조직문화를 다뤄본 적이 없네요'라고 반문한 분은 아마도 조직문화를 아티팩트 관점에 무게를 둔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실제 HRDer분들이 조직문화 담당자로 더 많이 보였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2. 조직이 표방하는 가치 (Espoused Belief and value) 한때 '-way'라는 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요. 저 역시 어느 날 대표님으로부터 모 기업의 '-way'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받아 제법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기업의 연수원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성실, 창의, 혁신과 같은 단어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우리는 "표방하는 가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방하는 가치는 눈에 보이지만 많은 경우 이들은그냥 좋은 말로 남아 있거나 인사평가 혹은 리더십 평가와 같은 보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의 재료로 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어느 기업도 불성실하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되자고 말할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표방하는 가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하나 알고 있습니다. 2001년 파산신청을 했던 미국의 한 기업, '엔론'의 이야기입니다. 엔론은 기업 핵심가치로 '존경, 정직, 대화, 탁월함'이라는 가치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엔론은 정직하지 못했고 결국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이슈를 일으켰지요.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이들이 표방한 가치는 실제 그 기업의 경영진을 포함한 구성원에게 내재화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표방하는 가치는 정직, 존경, 탁월함 등이었지만 실제 그들이 사용한 가치는 포장하고 속이고 손쉽게 돈을 버는 것에 존재했던 셈입니다. 이는 제도이론으로 보면 겉으로 표방하는 가치와 실제 사용하는 가치가 다른 것으로 디커플링(decoupling)으로, 혹은 미국의 경영학자 Chris Agyris가 이야기한 신봉이론(espoused theory)과 사용이론(theory in use)등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조직문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Edgar Schein이 말한 세 번째 수준이 필요합니다. 3. 기본 가정 (basic underlyingassumptions) 기본 가정은 해당 조직 내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이것에 대해서 만큼은 변화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예를 들어 좋은 조직문화인지 여부는 논외로 하고 어느 기업은 기업 구성원 아무나 붙잡고 우리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어본다고 가정해 봅시다. 대다수가 망설임없이 '성과'라고 말을 한다면, 적어도 우리 기업에서 성과만큼은 제1의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해당 조직에서 공통으로 생각하고 있는 '성과의 의미'가 있겠지요. 앞서 표방하는 가치가 신봉이론에 해당한다면 기본가정은 사용이론(theoryin use)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 가정은 앞서 살펴본 인공물(artifacts)이나 표방하는 가치(espoused belief andvalue)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당 조직에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해당 조직에서 표방하는 가치와 실제 사용되는 가치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할 겁니다. 우리가 표방하는 가치만 보고 기업을 판단하면 우리는 기업의 현재 상태를 잘못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죠. 이미 잘못해놓고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의미를 가진 속담입니다. 하지만 기업은 소를 잃었다고 해도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살려 다시 소를 키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파산이 목적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말이죠. 소를 잃은 후 외양간을 고칠 때 현재를 잘못 진단하면 그나마 남아 있던 가능성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인공물과 표방하는 가치가 실제 기본 가정과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욱 문제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었음을 알았을 땐 이미 시간이 지난 상태겠지요. 
조직문화 in HRM 인공물과 표방하는 가치, 그리고 기본 가정의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는 세 가지 수준을 생각해보면 HRM은 이 세 가지 조직문화의 수준을 각각이 아닌 통합적인 관점에서 제시하고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직무라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제가 HRM을 중심으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1. 인공물 HRM에 있어 인공물의 대표적인 도구는 '제도 institution'입니다. 우리가 흔히 근태관리제도, 평가제도, 취업규칙, 사규, 보상제도 등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평가와 보상은 그중에서도 중요도가 높은 제도들입니다. 한때 우리가 상당히 열광했던 모 기업의 컬쳐덱(culture deck)의 어딘가에 남겨져 있는 "누가 보상받고 누가 해고되는가"라는 문장을 기억하시나요? 협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평가제도는 경쟁을 부추기고 있고, 공정한 평가를 하겠다고 말하면서 그 기준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OKR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기존의 (본래의 MBO와 다른)MBO를 하고 있다면요? 아마도 현재 우리들, 그리고 지나온 시간의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인사팀은 믿을 곳이 아냐"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도를 만들 때 그 제도가 추구하는 가치 내지 방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제가 일을 배우는 시간에는 '왜' 라는 걸 모르는 채 '대기업, 글로벌 기업들이 하기 때문에'라거나 '인사평가, 근태관리, 보상제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한다'라는 식으로 배우고 일했습니다. "왜 하는가"를 정의하는 것, 제도를 통해 어떤 메시지가 구성원에게 전달되는가를 알고 이해하려 노력하기 시작한 건 그러한 경험에 대한 성찰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2. 표방하는 가치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인사팀도 그냥 좋은 인사팀이 되면 그냥 적당히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좋은 인사팀은 결국 아무 의미없는 인사팀이 될 겁니다. 인사는 그 직무의 성격에 기반한 기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인사가 가지는 기준이 어떤 경우에는 기업의 입장이 될 수도 있고 근로자 입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누군가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혹은 상황에 따른 이익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사가 가지고 있는 옳음의 기준에 기반한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더불어 이러한 인사의 기준은 표방하는 가치로서 구성원에게 공유되어야 합니다. 3. 기본 가정 HRM은 기본 가정을 인공물로서 제도에 녹여 인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연결하여 구성원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실제 제도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HRM은 구성원이 제도에 담긴 기본 가정을 이해하고 체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합니다. 인공물로서 제도는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을 제공합니다. '우리 조직에서 해서는 안되는 것',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HRM은 제도를 통해 구성원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러한 방식이 어느 정도 반복되고 축적되면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제도가 구성원의 행동을 제한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입퇴사가 많은 기업이라면 제도가 필요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보면 기존 구성원들을 통해 조직문화가 잘 잡혀 있다면 새로 들어온 구성원이 이를 이해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본 가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집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문장보다는 다소 개념적이거나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물이나 표방하는 가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달라지는 과정에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4. 그래서 소통 인공물과 표방하는 가치에 있어 구성원의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우리의 기본 가정이 보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합니다. 소통이 잘 된다는 건 조직 내 구성원들이 조금 더 편하게 말하고 듣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래서 이 과정을 기반으로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합니다. 아무리 인공물로서 타운홀미팅을 하고 정기적인 협의체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구성원이 그 미팅, 협의체를 하는 이유를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건 소통하는 척하는 것일 뿐일 겁니다. 5. 성과/가치 우리가 조직문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인공물 - 표방하는 가치 - 기본 가정」이 하나로 연결되어 일관성있는 메시지가 기업 구성원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일관된 메시지만 전달한다고 해서 바람직한 조직문화라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바람직한 조직문화는 기업이 만들고자 하는 가치로서 성과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있어 특정한 계기가 되는 사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해외의 어느 기업이 대형사고를 경험한 이후로 조직 내에서 '안전'이라는 가치가 제1의 기준이 된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잘 아는 故이건희 회장의 애니콜 화형식도 그러한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조직문화를 빠르게 바꾸고 인식을 심기위해 때로는 이러한 이벤트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OKR을 빠르게 안착시키고자 한다면 OKR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 낸 기회, 가치, 성과를 구성원에게 제시할 수 있으면 됩니다. 물론 이는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춘 사례이어야 합니다. 억지로 만든 사례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인공물 - 표방하는 가치 - 기본가정, 그리고 HRM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저는 HRM이 제도와 소통과정, 그리고 성과를 통해 나름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가장 적합한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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